[슬로베니아 0-1 잉글랜드] 밀너의 투입, 카펠로호를 구하다
[피치액션 l 안경남] 잉글랜드가 가까스로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그야말로 구사일생이다. 반드시 승점 3점이 필요했던 잉글랜드는 저메인 데포의 결승골에 힘입어 1-0 승리를 거두며 미국에 이어 조2위를 확보했다. 반면, 경기 전까지 조1위를 달리던 슬로베니아는 미국이 알제리를 꺾으며 순식간에 조3위로 밀려났다. 슬로베니아에겐 너무도 아쉽고 안타까운 경기였다.
선발 라인업
잉글랜드는 알제리전과 비교해 3명의 선수가 바뀌었다. 경고 누적으로 출전이 불가능한 제이미 캐러거를 대신해 매튜 업슨이 존 테리와 호흡을 맞췄고,(평소 왼쪽을 맡았던 테리는 왼발잡이 업슨이 투입되며 오른쪽으로 이동했다) 아론 레넌이 빠지고 제임스 밀너가 투입됐다. 그리고 최전방에선 데포가 에밀 헤스키 대신 루니의 파트너로 낙점됐다.
슬로베니아는 미국전에 출전했던 베스트11이 그대로 모습을 드러냈다. 최전방에 즐라탄 류비안키치가 배치됐고, 밀리보예 노바코비치는 좀 더 처진 위치에서 플레이를 펼쳤다.
양 팀 모두 전형적인 4-4-2 시스템을 사용했다. 잉글랜드의 경우 왼쪽의 스티븐 제라드가 중앙으로 파고드는 움직임을 보였고, 밀너는 오른쪽 측면으로 넓게 벌리며 크로스를 자주 시도했다. 그리고 글렌 존슨과 애슐리 콜이 틈틈이 공격에 가담하는 모습을 보였다. 슬로베니아는 발테르 비르사의 역습과 전방에 위치한 노바코비치와 류비안키치의 높이를 활용한 공격을 전개했다.
경기 템포의 차이
양 팀의 가장 큰 차이는 경기 템포였다. 반드시 승리가 필요했던 잉글랜드는 빠르게 공격을 전개했다. 볼 점유율을 높이며 상대를 압박했고, 대부분 상대진영에서 볼을 전개하며 여러 차례 찬스를 만들어냈다. 확실히 잉글랜드는 미국, 알제리전과 비교해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다. 다소 무기력하기까지 했던 알제리전과 달리 골을 넣겠다는 의지가 강했고 공수 밸런스가 매우 잘 유지됐다. 반면 최소한 비겨도 16강에 진출하는 슬로베니아는 경기 템포를 빠르게 가져가지 않았다. 측면의 비르사와 키름을 활용한 돌파를 자주 시도했지만, 중앙 미드필더와 좌우 풀백의 공격 가담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실점을 최소화하기 위해 수비에 중점을 둔 경기 운영을 펼쳤기 때문이다.
ⓒ 데이라이프 / 미국전에 실패했던 밀너 카드가 슬로베니아에겐 통했다
어게인 밀너 카드
사실 밀너의 선발 투입은 다소 의외였다. 미국과의 1차전에서 상당히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전반이 채 끝나기도 전에 교체 아웃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파비오 카펠로 감독은 16강 진출을 위한 중요한 경기에 다시 밀너를 투입했다. 이유는 알제리전에서 같은 포지션의 레넌이 부진했기 때문이다. 카펠로 감독은 알제리전에서 밀너 대신 레넌과 숀 라이트-필립스를 차례로 투입하며 측면에 스피드를 더했지만 이렇다 할 효과를 보지 못했다. 제라드가 측면에서 중앙으로 움직이는 상황에서 레넌까지 중앙으로 파고들며 공격의 좌우 밸런스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측면 미드필더가 모두 중앙으로 쏠렸기 때문에 알제리의 수비진은 좀 더 쉽게 잉글랜드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었다.
카펠로 감독은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밀너를 투입했고, 결과물을 얻는데 성공했다. 이날 밀너는 우측에서 상대 풀백을 유인하며 슬로베니아의 포백 간격을 벌렸고, 그 틈을 스피드가 좋은 데포가 파고들며 골을 만들어냈다. 밀너의 경우 확실히 레넌과 라이트 필립스에 비해 스피드는 떨어지지만 수비력이 좋고 측면에서 크로스가 정확하다. 때문에 공격시 팀의 밸런스를 맞추는데 있어 훨씬 좋은 역할을 하는 선수다. 물론 밀너 카드가 적중했던 가장 큰 이유는 잉글랜드가 이전 경기에 비해 공격지역에서 높은 볼 점유율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또한 슬로베니아의 왼쪽 미드필더인 키름의 부진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즉, 잉글랜드의 공격력이 정상궤도에 올랐다고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슬로베니아의 탈락은 너무도 아쉽다. 1, 2차전에서 인상적인 경기력을 선보였지만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하며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좀 더 공격적인 마인드로 경기를 펼쳤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비기도 되는 상황에서 무턱대고 공격을 지시하는 감독은 없을 것이다. 다만 이전 경기에 비해 다소 소극적으로 나온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하지만 경기막판 3명의 공격수를 투입하며 승부수를 띠운 마트야츠 케크 감독의 선택은 좋았다. 잉글랜드 수비진의 육탄방어가 없었다면 기적적인 동점골을 만들어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운이 따르지 않았고, 미국의 버저비터가 터지며 고개를 떨궈야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