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0-1 스페인] 패스의 미학, 푸욜의 결승골
[피치액션 l 안경남] 스페인이 독일을 꺾고 사상 첫 월드컵 결승진출에 성공했다. 쉬운 승부는 아니었다. 그러나 스페인이 경기를 주도했고, 독일 보다 훨씬 효과적으로 경기를 운영했다. 한 점차 박빙의 승부였지만, 스페인이 승리를 거둘만한 경기였다.
선발 라인업
두 팀 모두 선발 명단에 중요한 변화를 줬다. 독일의 변화는 불가피했다. 요아힘 뢰브 감독은 경고 누적으로 빠진 토마스 뮐러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피오트르 트로초프스키를 선발 출전시켰다. 당초 토니 크루스의 출전이 예상됐으나, 뢰브는 트로초프스키를 선택했다. 반면 비센테 델 보스케 감독은 논란이 됐던 페르난도 토레스를 빼고 바르셀로나의 윙어 페드로 로드리게스를 투입했다.
페드로와 부스케츠
이날 스페인의 히든 카드는 페드로와 세르히오 부스케츠였다. 먼저 페드로는 스페인 공격의 키플레이어 역할을 했다. 그는 측면과 중앙을 오가며 폭넓은 움직임을 선보였다. 전반 5분, 다비드 비야에게 정확한 전진패스를 연결했고, 이후에는 빠른 스피드를 활용한 돌파를 자주 시도했다. 특히 상당히 많은 움직임을 보였다. 특징 지역에 머물지 않고 좌우측면과 중앙을 끊임없이 오갔다. 스페인의 선발 명단에 토레스가 없었던 경기는 스위스전 뿐이다. 당시 토레스 대신 출전한 선수는 다비드 실바였다. 그러나 실바는 상당히 부진한 모습을 보였고, 이후 벤치로 물러났다. 경기 템포가 매우 느렸고, 움직임이 한쪽으로 치우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날 페드로는 달랐다.
다음은 부스케츠다. 그는 스페인 미드필더 중에서 가장 이름값이 처지는 선수이다. 그러나 실력만큼은 세계 정상급이다. 특히 독일전에서 부스케츠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맹활약을 펼쳤다. 경기 내내 메수트 외질을 견제했고, 스페인 공격의 시발점 역할을 했다. 샤비와 안드레스 이니에스타처럼 전방으로 연결되는 킬러패스는 없었지만, 볼을 소유한 뒤 팀 동료에게 안정적인 볼배급을 했다. 독일은 외질에게 집중된 수비를 분산시키기 위해, 외질과 사미 케디라의 위치를 자주 바꿨으나 스페인은 이러한 움직임에 상당히 유기적으로 대처했다. 부스케츠는 외질이 어느 위치에 있건 그를 따라다니며 압박했고, 케디라가 전진할 경우 샤비가 후방으로 내려와 커버 플레이를 펼쳤다.
압박과 수적우위
스페인은 독일을 상대로 상당히 적극적인 압박을 시도했다. 독일을 상대로 중원을 얇게 구성했던 잉글랜드, 아르헨티나와 달리 중앙에 많은 숫자를 두며 독일과의 미드필더 싸움에서 수적 우위를 점했다.(독일은 잉글랜드전에서는 3 vs 2로, 아르헨티나전에서는 4 vs 3으로 미드필더에서 보다 많은 숫자를 둘 수 있었다)
그러나 스페인전은 달랐다. 스페인은 이니에스타를 중앙으로 이동시키며, 이전 경기와 마찬가지로 중앙에 4명의 미드필더를 배치했다. 또한 동시에 좌우 풀백인 세르히오 라모스와 호안 카프데빌라를 전진시키며, 중앙에서 4 vs 3의 수적 우위를 늘 점했다. 독일은 측면 미드필더를 중앙으로 이동시켜 숫자 싸움을 유리하게 가지려 했지만, 스페인의 좌우 풀백이 상당히 높은 곳까지 전진하는 바람에 중원 싸움에 힘을 보태지 못했다. 특히 라모스의 움직임이 상당히 좋았다. 라모스는 적극적으로 오버래핑을 시도하며 포돌스키를 수비진영에 묶어뒀다.
이 때문에 독일은 공격전개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측면 미드필더인 포돌스키와 트로초프스키가 공격 보다는 수비진영에 자주 머물다보니, 역습의 속도가 붙지 못했고 전방의 미로슬라프 클로제가 고립됐다. 뮐러의 공백도 아쉬웠다. 트로초프스키도 수비적으론 좋은 활약을 펼쳤지만, 뮐러만큼은 아니었다. 뮐러의 장점은 전방의 클로제와의 호흡이 매우 좋다는 점이다. 뮐러는 수비뿐 아니라 볼을 잡은 뒤 연결하고, 침투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반면 트로초프스키는 이러한 움직임을 보여주지 못했다.
패스의 미학
스페인이 중원 싸움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패스다. 이날 스페인은 상당히 정확한 패싱력을 선보이며 독일을 상대로 경기를 주도했다. 부스케츠-알론소-이니에스타-샤비로 이어지는 환상의 패스라인은 좀처럼 볼을 빼앗기지 않았고, 좌우 풀백의 적극적인 오버래핑은 스페인이 시종일관 경기를 지배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였다. 그러나 패스의 정확도가 골로 연결되진 않았다. 일단 전방에 위치한 비야가, 상대 센터백의 집중 견제에 막혔고 공격 숫자가 부족했다. 즉, 중원에 선수는 많았지만 위험지역에서 공격을 마무리할 선수는 부족했다는 얘기다.
이 같은 패턴은 전반 내내 계속됐다. 스페인이 경기를 지배했고, 많은 슈팅과 크로스를 시도했지만 골은 터지지 않았다. 후반전 흐름도 비슷했다. 한 가지 변화는 스페인이 중거리 슈팅을 자주 시도했다는 점이다. 비록 골로 연결되지는 못했지만 페드로와 알론소의 중거리 슛은 꽤 효과적이었다. 하지만 측면 크로스의 경우 대부분 상대 수비벽에 걸렸다. 독일 역시 결정적 기회는 있었다. 외질과 포돌스키가 스페인의 우측면을 허물었고, 쇄도하던 크루스에게 일대일 찬스가 생겼지만, 이케르 카시야스의 선방에 막혔다. 이날 독일이 맞이한 가장 좋은 기회였다.
푸욜의 헤딩골
팽팽했던 흐름은 생각보다 단순한 상황에서 깨졌다. 전술적 변화나, 선수 교체가 아닌 코너킥에서 골이 터졌기 때문이다. 샤비가 코너킥을 올렸고, 푸욜이 쇄도하며 헤딩으로 독일의 골망을 흔들었다. 푸욜의 움직임이 좋았다. 독일의 맨마킹을 피하기 위해 박스 외각에 머물다 순간적으로 쇄도하며 골을 터트렸다. 이 골로 스페인은 점유율 뿐 아니라 경기까지 리드했고,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상당히 많은 시간이 남았지만, 스페인은 앞선 경기들처럼 안정적으로 경기를 운영했다. 패스게임을 통해 상대를 유인했고, 그 틈을 이용해 효과적인 역습을 시도했다. 쇄기골을 터트릴 찬스도 있었다. 비록 페드로의 욕심으로 인해 더 이상의 추가골은 터지지 않았지만, 스페인은 독일의 추격을 뿌리치며 결승 티켓을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독일의 뢰브 감독은 미드필더 케디라를 빼고 공격수 마리오 고메스를 투입하며 승부수 띄웠지만 역부족이었다.
독일, 희망을 보다
비록 결승진출에 실패했지만, 이번 남아공 월드컵에서 독일이 보여준 경기력은 대단했다. 특히 미드필더진의 활약이 뛰어났다. 하지만 아직 스페인을 능가할 수준은 아니었다. 외질, 슈바인슈타이거, 케디라 모두 뛰어난 재능을 갖춘 선수들이지만, 냉정히 말해 스페인의 이니에스타, 알론소, 샤비에 견줄만한 실력은 아니다. 하지만 독일의 어린 선수들은 세계에서 가장 축구를 잘한다는 스페인의 미드필더를 상대로 좋은 활약을 펼쳤고, 4년 뒤에는 더 강한 선수들이 될 것이다. 이는 독일 축구가 희망적인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