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4-1 잉글랜드] 형편없는 수비, 1966년의 저주
[피치액션 l 안경남] 독일이 잉글랜드를 대파했다. 사실 독일이 조금은 우세할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이토록 큰 점수 차가 날지는 몰랐다. 일단, 수준 이하의 선심과 심판이 잉글랜드를 벼락 끝으로 내몰았고, 형편없는 수비가 대량 실점의 빌미를 제공했다. 잉글랜드 입장에선 분명 아쉬운 경기였다. 프랭크 램파드의 골이 득점으로 인정이 됐다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독일이 잉글랜드를 압도한 경기였다.
선발 라인업
독일은 4-2-3-1 시스템을 사용했다. 퇴장으로 출전 정지를 받았던 미로슬로프 클로제가 돌아온 것을 제외하곤, 가나전 선발 라인업과 동일했다. 필립 람과 제롱 보아텡이 좌우 풀백에 위치했고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가 조금 처진 위치에서 홀딩 역할을 맡았다.
잉글랜드 역시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였던 슬로베니아전과 똑같은 선발 라인업을 구성했다. 포메이션 변화도 없었다. 저메인 데포와 웨인 루니를 전방에 배치한 전형적인 4-4-2 시스템을 사용했다. 제임스 밀너가 오른쪽 미드필더로 선발 출전했고, 제이미 캐러거가 경고누적에서 풀렸지만 매튜 업슨이 또 다시 선발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4-4-2의 약점
독일의 강점은 4-2-3-1의 공격형 미드필더를 맡고 있는 매수트 외질의 이선 침투에 있다. 때문에 독일 공격의 시발점인 외질을 견제하기 위해선 1명의 홀딩 미드필더를 두는 것이 효과적이다. 그러나 파비오 카펠로 감독은 독일전에 대비한 전술 변화를 시도하지 않았다. 잉글랜드 주축 포메이션인 4-4-2를 고집했고 그로인해 너무도 쉽게 골을 내주고 말았다.(호주도 4-4-2 시스템을 통해 전방부터 독일을 강하게 압박했지만, 후방에 외질을 놓치며 대량 실점을 하고 말았다. 가나 역시 마찬가지다. 수비형 미드필더인 아난이 외질을 자주 놓쳤고 결국 외질에게 결승골을 내주고 말았다)
이날 잉글랜드는 포백과 미드필더 사이에 간격이 자주 벌어졌다. 이 때문에 존 테리 혹은 업슨이 클로제와 외질을 견제하기 위해 자주 올라왔고, 그때 마다 독일에게 이선 침투를 허용했다. 특히 잉글랜드 센터백간의 호흡이 전혀 맞지 않았다. 보통 한 명이 전진하거나 맨마킹에 들어갈 경우, 다른 한 명은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커버 플레이를 펼쳐야한다. 그러나 테리와 업슨은 자주 포지션이 겹치거나 한쪽으로 쏠리는 모습을 보였다.(테리의 경우 보통 좌측에서 센터백을 맡아왔다. 그러나 업슨이 좌측에 서게 되면서 테리가 우측 센터백을 맡게 됐고, 익숙하지 않은 자리 탓인지 자주 위치를 벗어나곤 했다) 클로제의 선제골이 대표적이다. 테리가 지나치게 전진하며 마누엘 노이어 골키퍼의 골킥을 처리하지 못했고, 스피드가 느린 업슨은 클로제를 놓치고 말았다.
* 독일의 두 번째 득점 장면이다. 이때도 테리와 업슨이 모두 전진하며 수비 뒷공간이 완전히 열리고 말았다.
루카스 포돌스키의 두 번째 골도 포백라인이 완전히 무너지며 발생했다. 애슐리 콜이 외질을 견제하기 위해 전진했고, 업슨도 측면으로 빠진 클로제를 막기 위해 위치를 벗어났다. 문제는 테리도 똑같이 자신의 위치를 버리고 지나치게 전진했다는 점이다. 독일은 짧은 리턴 패스를 통해 잉글랜드의 수비를 완벽히 무너트렸고, 포돌스키가 날카로운 슈팅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도둑맞은 램파드의 골
잉글랜드가 살아나기 시작한 시점은 아이러니하게도 문제의 업슨이 공격가담을 통해 만회골을 성공시킨 이후부터다. 스티븐 제라드의 크로스가 날카롭게 올라갔고, 업슨이 상대 수비를 절묘하게 따돌리며 헤딩 슛을 성공시켰다. 이후 분위기는 순식간에 잉글랜드 쪽으로 다시 기울기 시작했다. 1분 뒤 박스 정면에서 램파드가 논스톱 슈팅을 때렸고, 이것이 골대 상단을 맞고 골라인을 통과했으나, 심판과 선심은 노골을 선언했다. 리플레이 결과 명확한 오심이었다. 그러나 판정은 번복되지 않았고 잉글랜드는 동점 찬스를 날리고 말았다.
ⓒ 데이라이프 / 1966년의 저주?
독일의 역습
계속되는 수비실수에도 불구하고, 카펠로 감독은 하프타임을 통해 아무런 변화도 주지 않았다. 그 때문에 램파드의 프리킥이 골대를 맞는 등 결정적인 기회를 잡기도 했지만, 테리와 업슨이 버티는 뒷문은 계속해서 불안했다. 결국 우려했던 상황이 후반 66분 발생했다. 프리킥 상황에서 가레스 배리가 쓸데없이 드리블을 시도하다 빼앗겼고, 곧바로 역습에 나선 독일이 추가골을 뽑아냈다. 슈바인슈타이거에서 포돌스키 그리고 토마스 뮐러로 이어지는 환상적인 콤비 플레이였다.
스코어가 벌어질수록 잉글랜드의 무게중심은 더욱 앞으로 쏠리기 시작했고, 4분 뒤 또 다시 독일의 역습에 실점을 허용하고 말았다. 이번에는 외질이 좌측에서 폭발적인 스피드로 배리를 제친 뒤 박스 안으로 볼을 연결했고, 쇄도하던 뮐러가 가볍게 밀어 넣으며 승부의 마침표를 찍었다. 독일의 역습은 상당히 빠르고 간결했다. 상대의 실수를 놓치지 않고 득점으로 연결하며 계속해서 리드를 잡았고, 후반에는 잉글랜드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들며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1966년의 저주
잉글랜드로선 램파드의 노골 선언이 너무도 아쉬운 판정이 됐다.(이번 대회 최대의 오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독일의 경기력이 더 나앗던 것 또한 사실이다. 어쩌면, 44년 전 억울했던 판정이 이제야 독일의 손을 들어줬다고 볼 수도 있다. 솔직히 냉정히 말해 잉글랜드에게 8강은 사치라고 생각한다. 뛰어난 선수와 훌륭한 감독을 보유했지만, 그들이 보여준 경기력은 기대 이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