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알 마드리드 4-0 토트넘] 8강 1차전: 크라우치 때문에?
[피치액션 l 런던(영국) 안경남] '최고의 전술가' 무리뉴와 '자칭 비전술가' 레드냅의 승부는 너무도 싱겁게 끝이 났다. 토트넘은 너무 이른 시간 실점을 허용했고 피터 크라우치마저 퇴장 당하며 75분 동안 어려운 경기를 펼쳤다. 레드냅 감독은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으려 노력했지만 역부족이었다.
토트넘 참사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경기시작 4분 만에 골을 허용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크라우치의 멍청한 태클 때문일까? 산티아고 베르나베우로 다시 돌아가 보자.
● 베스트11
조세 무리뉴 감독은 베스트11에 커다란 변화를 주지 않았다. 부상 중인 카림 벤제마 대신 엠마뉘엘 아데바요르가 원톱으로 나선 것이 유일한 변화였다. 출전이 불투명했던 크리스티아노 호날두와 마르셀루 모두 선발 명단에 이름을 올렸고 중원은 사비 알론소와 사미 케디라가 맡았다.
해리 레드냅 감독 당초 예상과 조금은 다른 진영을 선보였다. 경기 직전 아론 레넌이 감기 증상을 보이며 명단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대신 저메인 제나스가 산드로와 함께 중원에 포진했다. 레넌의 자리는 가레스 베일이 위치 이동을 통해 메웠고 루카 모드리치는 왼쪽에 배치됐다.
● 포메이션
레알(4-2-3-1): 홈 경기인데다 객관적인 전력에서 앞서는 만큼 세 명의 미드필더(알론소-케디라-디아라)를 기용하진 않았다. 좌우 측면에 주발과 반대발을 사용하는 윙포워드(호날두, 디 마리아)를 배치했고 메수트 외질이 중앙을 맡았다. 그리고 왼쪽 풀백 마르셀루가 적극적인 오버래핑을 시도했다. 포메이션이나 전술 모두 기존의 틀을 그대로 유지했다.
토트넘(4-4-1-1): 레넌의 결장으로 인해 포지션상에 변화가 발생했다. 베일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했고 모드리치가 좌측을 맡았다. 중앙에선 제나스와 산드로가 호흡을 맞췄고 최전방 원톱은 피터 크라우치가 선택됐다. 전체적인 틀은 4-4-1-1이었지만 모드리치가 다소 중앙에 치우치며 좌우 균형이 맞지 않았다. 그리고 베일도 오른쪽에선 위협적이 못했다.
● 전반전
전반 4분 아데바요르의 헤딩골부터 토트넘은 꼬이기 시작했다. 코너킥 상황에서 제나스가 아데바요르를 완벽하게 놓쳤다. 이것은 경기 직전 레넌에서 제나스로 바뀐 선발 라인업의 영향이 크다. 코너킥과 같은 세트피스의 경우 사전에 연습을 통해 이뤄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제나스가 갑자기 투입되면서 전담 마크가 바뀌었고 이것이 혼란을 불러왔다.
코너킥 당시 크라우치의 애매한 위치도 이것을 증명한다. 상식적으로 레알에서 가장 키가 큰 아데바요르를 막기 위해선 제나스보다 크라우치가 더 효과적이다. 그러나 크라우치는 엉뚱한 곳에서 아데바요르가 헤딩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레드냅 감독은 왜 크라우치에게 아데바요르 견제를 지시하지 않은 것일까?
크라우치의 실수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정확히 11분 뒤 두 번째 경고를 받고 퇴장 당했다. 경기 초반 적극적인 움직임은 좋았지만 그것이 도를 지나쳤다. 크라우치의 퇴장은 토트넘에게 수적 열세 뿐 아니라 전술적으로도 치명적인 손해를 안겨줬다. 상대 진영에서 볼을 확보하기가 더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 전술 포인트① l 레알 마드리드
레알 마드리드의 전술적 특징은 크게 두 가지였다. 1) 상대진영부터 강한 압박을 시도했고 2) 수비라인을 제법 높은 위치까지 끌어 올렸다. 두 가지 모두 효과적이었다. 토트넘 수비의 실수를 유발했고 크라우치의 높이를 활용한 공격을 무력화시켰다. (*수비라인을 올릴 경우 발생하는 문제점은 발 빠른 공격수들에게 뒷공간을 쉽게 내줄 수 있다는 점이다. 바르셀로나와 아스날의 16강전을 생각하면 된다. 그러나 크라우치는 제공권이 좋지만 발이 빠른 선수는 아니다. 즉, 라인을 올리는 것이 크라우치와 같은 선수에게는 더욱 효과적이다)
문제는 높은 볼 점유율과 위협적인 측면 돌파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추가골을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플레이메이커로 나선 외질은 중앙에서 전진패스나 문전 침투를 통해 토트넘의 이중 수비벽을 뚫기 보다는 계속해서 좌우 측면을 오갔다. 이것이 레알의 측면 공격에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당시 레알에게 필요한 건 창의적인 패스였다.
● 전술 포인트② l 토트넘
아데바요르에게 헤딩골을 허용한 것을 제외하면 토트넘의 전반전 수비는 매우 훌륭했다. 포백 수비수들 간의 진영을 잘 유지했고 레알의 측면 공격에 대한 대비도 좋았다.
크라우치 퇴장 이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동한 베일의 돌파력도 간간히 위협적이었다. 그러나 베일에게 연결되는 패스의 정확도가 떨어졌기 때문에 많은 찬스를 만들지는 못했다. 이는 짧은 패스보다는 롱 패스의 비중이 높았고 크라우치의 부재로 인해 세컨 볼 찬스가 급격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 후반전
레드냅 감독은 후반 시작과 함께 반 데 바르트를 빼고 저메인 데포를 투입했다.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레알이 수비라인을 끌어올렸기 때문에 반 데 바르트보다는 스피드가 좋은 데포가 훨씬 효과적이다. 하지만 후반 들어 토트넘 선수들 대부분이 체력적인 문제를 들어내며 데포에게 연결되는 패스의 숫자가 너무도 부족했다.
토트넘의 투지 넘치는 수비도 아데바요르의 두 번째 골이 터지면서 완벽히 무너졌다. 레알의 압박은 계속됐고 점유율은 더욱 높아져 갔다. 토트넘은 공격적으로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었고 수비라인 역시 계속되는 레알의 공세 속에 조금씩 흐트러졌다. 결국 디 마리아의 환상적인 세 번째 골과 "때리면 열리리라!"를 외치며 경기 내내 슈팅을 난발했던 호날두가 마지막 골을 터트리며 경기는 4-0 레알의 승리로 끝이 났다.
● 갈무리
토트넘에게는 최악의 출발이었다. 경기 직전 레넌이 갑작스럽게 명단에서 제외됐고 전반 15분 만에 크라우치가 레드 카드를 받고 그라운드를 떠났다. 이런 상황에서 경기를 뒤집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코너킥 상황에 대한 대비도 아쉬웠다. 첫 번째 골은 물론 두 번째 골 역시 레알의 빠른 코너킥 시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반면 레알에게는 기분 좋은 승리였다. 이른 시간 선제골을 터트렸고 수적 우위를 점하며 비교적 여유롭게 경기를 풀어나갔다. 하지만 공격 전개는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아데바요르의 높이가 아니었다면 경기 내내 헛심만 썼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