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시백] 2002년 태극전사와 히딩크, 우리들의 전설
[피치액션 l 안경남] 2002년 여름,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던 그날의 추억을 우리는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붉은 옷을 입고 태극기를 흔들며 거리로 뛰쳐나와 ‘대한민국’을 목이 터져라 외쳤고, 멋진 골로 화답하는 대표팀을 보고 한없이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그곳에는 필자도 있었고, 대한민국 모두가 있었다.
“좋은 추억과 사랑을 갖고 있는 한국을 다시 찾게 되어 기쁘다.” - 히딩크 감독, 2009년 6월 인천국제공항에서 -
‘명장’ 거스 히딩크 감독이 오랜만에 한국을 찾았다. 28일 오후 1시경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한 히딩크 감독은 “7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은 한국 축구에 있어서 위대한 업적이다.”며 한국 축구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을 과시했다. 바쁜 일정 속에 의미 있는 만남도 이뤄졌다. 29일 오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대한축구협회 만찬에서 히딩크 감독과 4강 신화의 주인공인 박지성, 이영표, 홍명보, 김태영이 오랜만에 조우한 것이다. 비록 당시의 주역들이 모두 모이진 못했지만, 이들의 만남만으로 2002년의 행복했던 추억을 떠올리기에는 충분했다.
▲ 어리석게도 히딩크를 믿는 사람은 없었다
2002년 3월, 히딩크 감독은 유럽전지훈련도중 가진 외신과의 기자회견에서 “세계를 놀라게 하겠다.”며 다가올 월드컵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러나 이 말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잘해야 1승, 기적이 일어나야 16강에 갈 수 있다고 모두들 생각했다. 월드컵 개막이 보름 앞으로 다가온 5월 16일, 대표팀은 마지막 점검에 들어갔고 스코틀랜드-잉글랜드-프랑스와 최종 모의고사를 실시했다. 결과는 1승 1무 1패, 한국은 스코틀랜드를 상대로 환상적인 플레이를 펼치며 4-1 대승을 거뒀고, ‘축구종가’ 잉글랜드와는 1-1 무승부 그리고 ‘아트사커’ 프랑스에게는 2-3으로 석패했다. 주변의 반응은 급속도로 달라졌다. 스코틀랜드를 상대로 대승을 거둘 때만 하더라도 “시차적응도 안된 애들을 데리고 무의미한 승리를 거뒀다.”며 애써 평가절하 하던 언론들도 잉글랜드, 프랑스와의 대결에서 인상적인 경기력을 선보이자 색안경을 고쳐 쓰기 시작했다.
“현재 16강 가능성은 50%다. 매일 1%씩 올리면 월드컵 개막일인 5월 31일에는 지금의 가능성이 100%가 될 것이다.” - 히딩크 감독, 2002년 4월 ‘D-50일’ 기자회견에서 -
▲ 4강 신화의 전주곡, 월드컵 본선 첫 승
2002년 6월 4일/조별예선 1차전/부산월드컵경기장/vs폴란드(2-0)
4만8천명이 넘는 관중이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을 가득 메웠다. 경기장을 찾지 못 한 사람들은 광장과 술집에 모여 ‘대한민국’을 외쳤고, 모두들 긴장된 마음으로 휘슬이 울리기만을 기다렸다. 한국의 본선 첫 상대는 유럽의 ‘다크호스’ 폴란드였다. ‘귀화용병’ 올리사데베를 앞세운 폴란드는 오랜만에 본선 무대에 모습을 드러냈지만, 안정된 경기력을 바탕으로 유럽 예선을 일찌감치 통과하는 등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경기 초반 폴란드의 강한 공세에 잠시 흔들렸던 한국은 ‘주장’ 홍명보의 강력한 중거리 슈팅을 계기로 서서히 주도권을 가져오기 시작했다. 전반 26분, 이을용의 크로스를 ‘황새’ 황선홍이 감각적인 논스톱 슈팅으로 폴란드의 골망을 흔들었다. 월드컵 첫 승의 신호탄이자 앞으로 펼쳐질 4강 신화의 시작이었다. 폴란드는 한국의 강한 압박에 이렇다 할 공세를 펼치지 못했고, 후반 8분 ‘멀티플레이어’ 유상철에게 쐐기골을 얻어맞으며 한국 월드컵 본선 첫 승의 재물이 됐다.
▲ 이을용 그리고 안톤오노 세리머니
2002년 6월 10일/조별예선 2차전/대구월드컵경기장/vs미국(1-1)
폴란드를 꺾으며 월드컵 본선에서 첫 승리를 거둔 한국의 기세는 하늘을 찌를 듯 했다. 선수들의 눈에는 오직 ‘승리’만이 보였고, 히딩크 감독은 미국을 상대로 일찌감치 16강행을 확정지으려 했다. 하지만 무덥기로 소문난 대구에서의 낮 경기는 선수와 관중 모두에게 힘든 일이었다. 한국에게 유리하게 흘러가던 경기는 이을용이 페널티킥을 실축하면서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이후 황선홍이 헤딩 경합 도중 눈썹 부위가 찢어지는 부상당하면서 경기장 밖으로 나갔고, 미국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미국의 순간적인 이대일 패스에 실점을 하고만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포기하지 않았다. 아니 포기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후반 56분 황선홍을 대신해 안정환이 투입됐고, 한국의 공격은 계속됐다. 후반 33분 다소 먼 거리에서 프리킥을 얻었고 이을용이 올린 볼을 쇄도하던 안정환이 헤딩으로 연결시켰다. 경기 내내 자책감에 시달렸던 이을용은 두 주먹을 불끈 쥐었고, 안정환과 선수들은 그라운드 한쪽에 모여 안톤오노 세리머니를 펼쳤다. 비록 승리를 거두진 못했지만, 미국을 향한 통쾌한 복수였다.
▲ '제자' 박지성과 '스승' 히딩크의 포옹
2002년 6월 14일/조별예선 3차전/인천문학경기장/vs포르투갈(1-0)
16강을 가기 위해선 반드시 승리가 필요했다. 패할 경우 동시간대 펼쳐질 미국과 폴란드의 경기 여부에 따라 탈락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모두의 시선이 인천문학경기장으로 향했다. 미국전에서 부상을 당했던 박지성이 모두의 예상을 깨고 선발 명단에 이름을 올렸고 부상으로 인해 1, 2차전에 결장했던 이영표는 이을용을 대신해 오랜만에 그라운드에 모습을 드러냈다. 상대는 이번 대회 우승후보 중 하나인 포르투갈이었다. 루이스 피구, 파울레타, 콘세이상, 루이 코스타, 누노 고메즈 등 유럽 정상급 선수들로 구성된 포르투갈의 위용은 보는 것만으로도 대단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자 경기를 주도한 쪽은 한국이었다. 송종국은 세계 최고의 윙어 루이스 피구를 꽁꽁 묶었고, 이영표는 헛다리짚기를 활용한 현란한 드리블로 포르투갈의 수비진을 흔들어 놓았다. 여기에 포르투갈 선수 2명이 퇴장을 당하며 상황은 급속도로 한국에게 유리해져 갔다. 후반 25분 드디어 균형의 추가 무너졌다. 이영표가 길게 올린 크로스를 박지성이 받아 가슴 트래핑 후 콘세이상을 넘기는 재치 있는 볼 터치와 골키퍼 가랑이 사이를 통과하는 멋진 왼발 논스톱 슈팅으로 포르투갈의 골네트를 흔들었다. 골이 터지자 히딩크는 박지성에게 신호를 보냈고, 이를 본 박지성은 팀 동료들을 뿌리치며 히딩크에게 안겼다. 결승골이었다.
“바라던 16강 꿈은 이뤘다. 이젠 8강에 도전한다. 나는 아직도 (승리에) 배가 고프다.” - 히딩크 감독, 2002년 6월 이탈리아전을 이틀 앞둔 날 -
▲ 각본 없는 드라마 그리고 '반지의 제황' 안정환
2002년 6월 18일/16강전/대전월드컵경기장/vs이탈리아(2-1,연장)
이탈리아와의 16강은 '4강 신화'의 하이라이트였다. 경기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했고, 한 편의 각본 없는 드라마와도 같았다. 경기 초반, 한국은 뜻밖의 페널티킥을 얻어내는 행운을 얻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페널티킥 악몽은 계속됐다. 키커로 나선 안정환은 골문 구석을 노렸으나 유럽 최고의 골키퍼 중 한명인 지안루이지 부폰의 선방에 막히고 말았다. 경기 흐름은 이탈리아 쪽으로 넘어가기 시작했고, 전반 18분 코너킥 상황에서 크리스티안 비에리가 헤딩 선제골을 터트렸다. 한국을 상대로 “1골이면 충분하다”던 이탈리아는 이후 빗장 수비에 들어갔고 한국은 이탈리아의 골문을 공략하는데 애를 먹었다. 꺼져가던 불씨가 되살아난 건 후반 43분이었다. 박지성의 패스를 받은 황선홍이 곧바로 페널티 박스 안으로 볼을 띄워줬고, 문전 혼전 상황에서 설기현이 왼발 슈팅으로 굳게 닫혀있던 이탈리아의 골문을 열었다. 그러나 이것은 앞으로 펼쳐질 기적의 시작에 불과했다. 프란체스코 토티가 퇴장 당하며 수적 우위를 점한 한국은 계속해서 공세를 펼쳤고, 연장 후반 12분 이영표의 크로스를 안정환이 헤딩 골든골로 마무리 지으며 8강 진출의 역사를 써냈다. 페널티킥 실축 후 경기 내내 울면서 뛰었다는 안정환은 자신의 실수를 끝내 골로써 만회하며 한국축구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 '아시아의 자존심' 한국과 홍명보의 미소
2002년 6월 22일/8강전/광주월드컵경기장/vs스페인(5-3,PK)
‘PRIDE OF ASIA’ 8강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아시아 국가 한국은, 빛고을 광주에서 ‘무적함대’ 스페인과 만났다. 포르투갈-이탈리아에 이어 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이 상대한 3번째 강팀이었다. 카시야스, 카를레스 푸욜, 페르난도 이에로, 페르난도 모리엔테스 등 스페인 명문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에서 활약하는 수퍼 스타들이 즐비했다. 하지만 이미 꿈을 향해 질주를 시작한 한국을 막을 순 없었다. 경기는 몇 차례 공방전을 거듭한 끝에 연장전을 거쳐 승부차기에 돌입했다. 첫 번째 키커는 이번 대회 첫 골의 주인공 황선홍이었다. 그의 발끝을 떠난 볼은 카시야스의 몸 쪽으로 향했으나 다행히 골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후 박지성, 설기현, 안정환이 차례로 골을 성공시켰고 스페인의 4번째 키커가 모습을 드러냈다. ‘신예’ 호아킨이었다. 승부차기에 대한 부담감 때문인지 골문을 노려보는 호아킨의 눈빛은 흔들렸고, 그가 찬 볼은 이운재의 선방에 막혔다. ‘대한민국’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마지막 키커인 ‘주장’ 홍명보가 등장했고, 그는 침착하게 골문 구석으로 골을 성공시켰다. 순간 조용했던 정적이 깨지며 하늘을 찌를 듯 한 함성이 광주월드컵경기장을 뒤덮었다. 아니, 대한민국 전체를 뒤덮었다.
“요코하마에 가지 못해 아쉽다. 그러나 선수들은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을 보여줬다. 한국 국민들의 뜨거운 성원에 감사한다.” - 히딩크 감독, 독일과의 4강전 패배 후 -
▲ 우리의 꿈★은 이미 이루어졌다.
2002년 6월 25일/4강전/서울월드컵경기장/vs독일(0-1)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카드섹션이 서울월드컵경기장에 등장했고, 한국은 내친 김에 독일을 넘어 요코하마행 티켓을 확보하려 했다. 하지만 무더위와 계속된 강행군 속에 태극전사들은 지쳐있었다. 특히 두 번의 연장전으로 인해 심한 체력 저하가 왔고, 여기에 주전 선수들의 부상이 겹치며 한국은 불완전한 상태에서 ‘전차군단’ 독일을 상대해야 했다. 그러나 한국의 투지는 대단했다. 독일을 상대로 결코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처음으로 선발 출전의 기회를 잡은 이천수와 차두리는 패기를 앞세워 독일을 공략했고, 황선홍과 홍명보는 노련하게 팀을 이끌었다. 하지만 더 이상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후반 30분 역습상황에서 독일의 미하엘 발라크가 결승골을 터트렸고, 한국은 ‘거미손’ 올리버 칸이 지키는 독일의 골문을 열지 못하며 패하고 말았다. 첫 패배였다. 짧은 아쉬움이 있었지만 이내 태극전사들을 향한 뜨거운 박수가 이어졌다. 비록 경기에는 패했지만 이미 우리의 꿈은 이루어져 있었다.
▲ 형제의 나라 터키와 'CU@K리그'를 꿈꾸다.
2002년 6월 29일/3-4위전/대구월드컵경기장/vs터키(2-3)
‘형제의 나라’ 터키와의 3/4위전은 축제와도 같았다. 그동안 숨 막히는 승부 속에 여러 차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던 사람들은 보다 편한 마음으로 한국의 마지막 경기를 지켜볼 수 있었다. 월드컵 내내 화제가 됐던 카드섹션의 마지막은 ‘CU@K리그’였다. 2002년 여름의 뜨거웠던 축구 열기를 K리그에서도 계속해서 이어가자는 의미였다. 비록 7년이 지난 지금, 당시의 약속이 무너진 것 같아 안타깝긴 하지만 축구가 계속되는 한 언젠가 그 소망이 이뤄지리라 생각한다. 승패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지만, 터키와의 3/4위전은 다소 아쉬움이 남는 경기였다. 11초라는 월드컵 역대 최단시간 골을 허용하며 불안하게 경기를 시작한 한국은, 8분 뒤 이을용의 멋진 왼발 프리킥으로 균형을 이루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김태영이 빠진 한국 수비진은 크게 흔들렸고 전반 13분과 32분 잇따라 골을 허용하며 무너지고 말았다. 이후 후반 종료 직전 송종국이 한 골을 만회하는데 그친 한국은 2-3으로 분패하며 최종 성적 4위로 대회를 끝마쳤다. 그리고 강렬한 태양 빛 만큼이나 눈부셨던 그 해 여름의 기억은 그렇게 우리들 마음속에 영원한 전설이 되었다.

2009/07/01 12:34
다시 한국 대표팀 감독이 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볼께요
2009/07/03 12:38
음, 개인적으론 이대로 우리들의 '전설'로 남아 있는게 더 좋을 듯 싶기도 하네요^^;;
2009/07/01 12:50
아,,, 다시 읽는 것 만으로도 짜릿하네요~
전 사실 폴란드와의 첫경기가 가장 인상에 깊었습니다. 처음으로 월드컵 본선무대에서의 승리라서...
2002년 여름은 정말 잊지 못할거 같습니다~ ^^*
2009/07/03 12:39
네~ 2002년의 추억은 정말이지 평생 잊지 못한 경험이었으니깐요!~ 다시 한 번 이럴 날이 올까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