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2-1 바레인] 구자철 시프트와 곽태휘의 퇴장
[피치액션 l 런던(영국) 안경남] '왕의 귀환' 한국 축구 대표팀이 바레인을 2-1로 꺾으며 기분 좋은 스타트를 끊었다. 공격형 미드필더(혹은 처진 공격수)로 출전한 '어린 왕자' 구자철은 혼자서 두 골을 터트리며 이날의 영웅으로 떠올랐고 셀틱의 '기차 듀오' 기성용과 차두리는 나란히 도움을 기록했다. 반면, 센터백 곽태휘는 후반 막판 레드카드를 받으며 애매한 판정의 희생양이 됐다.
선발 라인업 l 4-2-3-1
조광래 감독은 공언했던 대로 4-2-3-1 시스템을 사용했다. 지동원이 원톱으로 나섰고 그 뒤를 구자철이 받쳤다. 좌우 측면은 변함없이 박지성과 이청용이 배치됐고 기성용과 이용래가 더블 볼란치 역할을 맡았다. 조광래 감독의 고민 중 하나였던 오른쪽 풀백의 주인공은 차두리가 됐고 중앙에선 곽태휘와 이정수가 호흡을 맞췄다.
살만 샤리다 감독은 4-1-4-1 시스템을 가동했다. 포메이션상 극단적인 수비전술은 아니었지만 4명의 미드필더가 수비적인 움직임을 보이며 사실상 4-5-1에 가까운 형태를 띠었다. 때문에 원톱 제이시 존이 자주 고립됐다. 샤리다 감독은 객관적인 전력의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한국 진영에서 자주 파울을 얻어내며 득점확률이 높은 세트피스를 노렸다.
전반전 l 구자철, 차두리 전진
시리아와의 평가전에서 확인했듯이 한국은 이날도 전형적인 타켓형 공격수를 사용하지 않았다. 원톱 지동원은 마치 윙포워드처럼 좌측면으로 자주 빠지며 상대 수비수를 유인했고 그 틈을 구자철과 박지성이 파고들며 찬스를 만들었다. 구자철은 전방에서 안정적인 볼 키핑과 패싱력을 바탕으로 한국이 볼 점유율을 높이는데 기여했고 박지성은 좌측면에서 경기를 시작했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중앙에서 보냈다. 그리고 이청용은 측면과 중앙을 적절히 넘나들며 바레인 수비진을 흔들었다.
가장 인상적인 선수는 오른쪽 풀백 차두리였다. 이날 차두리는 상당히 공격적인 오버래핑을 시도했다. 차두리는 이청용이 측면에서 중앙으로 꺾고 들어오며 바레인의 풀백을 유인할 때 측면 깊숙이 전진해 크로스를 올렸다. 비록 전반에 이렇다 할 공격 포인트로 연결되진 못했지만 차두리의 오버래핑이 이청용에 대한 집중견제를 분산시키는 역할을 했다.
기성용과 이용래의 유기적인 움직임도 좋았다. 두 선수 모두 기본적으로 수비에 치중을 두며 경기를 운영했지만 공격 시에는 상당히 적극적으로 전진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기성용은 후방으로 자주 내려와 빌드 업 작업을 도왔다.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1차 저지선 역할 뿐 아니라 정확한 롱 패스를 통해 공격의 시발점 역할을 했다. 이용래의 동선도 매우 흥미로웠다. 이용래는 박지성이 중앙으로 파고들 때 좌측으로 이동해 마치 측면 미드필더처럼 움직였다. 또한 이영표가 전진할 때는 풀백 역할을 하기도 했다. 조광래 감독이 왜 이용래를 중용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구자철의 선제골은 전반 39분에 터졌다. 기성용의 슈팅이 전방에 있던 구자철에게 연결됐고, 구차철이 이를 침착한 슈팅으로 마무리 지으며 바레인의 골망을 흔들었다. 구자철의 움직임도 좋았지만 가장 결정적인 원인은 바레인의 수비진영이 흐트러졌기 때문이다. 한국은 데드볼 상황에서 빠르게 볼을 연결했고 기성용이 볼을 잡았을 때 바레인 수비수들이 타이트하게 이를 견제를 하지 못했다. 게다가 지동원이 바레인 센터백 중 한명을 유인한 상황에서 나머지 한 명이 구자철을 놓치며 박스 안에서 완벽한 슈팅 기회가 생겼다. 물론 구자철의 마무리 능력도 한 몫을 했다.
후반전 l 곽태휘 퇴장
한국의 상승세는 후반에도 계속됐다. 그리고 이번에도 추가골의 주인공은 구자철이었다. 후반 6분 공격 가담에 나선 차두리가 박스 우측에서 강력한 슈팅을 시도했고 골키퍼가 가까스로 처낸 볼을 구자철이 쇄도하며 득점에 성공했다. 전반부터 이뤄진 차두리의 오버래핑이 끝내 결실을 맺은 셈이다. 차두리는 이후에도 상당히 적극적으로 공격 가담하며 위협적인 슈팅을 시도했다. 전반에 주로 측면 돌파에 이은 크로스에 주력했다면 후반에는 측면에서 중앙으로 파고들며 바레인 수비를 흔들었다.(후반 65분 왼발 슈팅은 최근 셀틱에서 성공시킨 득점 장면과 유사했다)
후반 67분 조광래 감독은 지동원을 빼고 손흥민을 투입했다. 시스템에 변화는 없었다. 손흥민이 지동원의 역할을 그대로 이어받았고 이청용은 좌우로 좀 더 폭넓게 움직였다. 후반 중반을 넘기자 양 팀 모두 변화의 강도를 더욱 높였다. 한국은 구자철을 빼고 염기훈을 투입하며 공격 라인을 재편했고, 바레인은 이스마일을 빼고 알 데켈을 투입하며 전방에 투톱을 배치한 4-4-2(혹은 4-1-3-2) 시스템으로 전환했다.
결과적으로 바레인의 공격적인 변화를 성공을 거뒀다. 후반 82분 교체 투입된 알 데켈이 페널티 박스 안에서 곽태휘와의 몸싸움 끝에 넘어졌고 심판은 레드카드와 함께 페널티킥을 선언했다. 박문성 해설위원이 "곽태휘 왜 퇴장인가?"라는 칼럼을 통해 언급하기도 했지만 레드카드까지 받을 만큼 심한 파울이 있었는지 의문이다. 오히려 경기 내내 심판 판정에 두 팔을 들며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던 곽태휘에 대한 심판의 복수는 아닐까?
어쨌든 이후 경기는 매우 재미있는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조광래 감독은 곧바로 손흥민을 빼고 조용형을 투입하며 곽태휘의 공백을 메웠고 전방에는 염기훈, 이청용, 박지성을 남겨둔 채 4-2-3 포메이션으로 변화를 줬다. 경기 막판 바레인의 파상공세가 다소 위협적이긴 했지만 한국은 노련하게 위기를 대처했다. 염기훈과 이청용이 드리블을 통해 시간을 벌었고 수비에선 정성룡 골키퍼가 안정적으로 공중볼을 처리하며 더 이상 실점을 허용하지 않았다.
갈무리 l 세트피스는 어디로 사라졌나?
전체적으로 한국이 경기를 주도한 경기였다. 패스 게임을 통해 볼 점유율을 높였고 선수들 간의 유기적인 포지션 체인지를 통해 바레인의 밀집 수비를 흔들었다. 구자철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고 차두리의 공격 가담은 상당히 위협적이었다. 그러나 한 골도 만들어내지 못한 세트피스는 아쉬웠다. 허정무 감독시절 한국의 가장 큰 무기는 세트피스였다. 그러나 이날 한국은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코너킥(10개)과 프리킥(25개)을 시도했지만 득점으로 연결되지 못했다.
곽태휘의 퇴장도 옥의 티다. 사실 이날 바레인의 공격은 그다지 위협적이지 못했다. 때문에 후반 알 데켈이 투입되기 전까지 한국의 포백은 별다른 어려움 없이 상대 공격을 막아냈다. 그러나 후반 막판 바레인이 투톱으로 시스템을 전환한 뒤 발 빠른 공격수를 투입하자 곧바로 페널티킥을 내주고 말았다. 레드카드의 유무를 떠나 페널티킥을 내줬다는 것 자체가 문제다. 수비 진영에 집중력이 요구되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