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툴바

선발 라인업 l 한국 vs 온두라스

[피치액션 l 런던(영국) 안경남] 한국이 2011년 국내에서 열린 첫 평가전에서 대승을 거두며 브라질 월드컵을 향한 산뜻한 출발을 알렸다. 내용과 결과 모두 나쁘지 않는 경기였다. 4골을 넣었고 무실점으로 경기를 마쳤다. 덕분에 박지성과 이영표의 공백 얘기는 쥐 죽은 듯이 쏙 들어갔다. 그러나 대다수의 축구 팬들이 지적했듯이 "온두라스가 너무 약했던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경기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 찝찝했던 예상은 며칠 뒤 중국에 의해 사실로 밝혀지고 말았다.

선발 라인업 l 4-1-4-1 포메이션
조광래 감독은 당초 예언대로 4-1-4-1 포메이션을 가동했다. 캡틴 박주영이 최전방 원톱으로 나섰고 좌우 측면에 이청용과 김보경이 배치됐다. 그리고 중앙에는 김정우와 이용래가 나란히 포진했고 기성용이 포백 바로 앞에서 홀딩 역할을 맡았다.

수비 라인의 변화 폭은 제법 컸다. 이정수와 황재원이 지킨 중앙 수비는 변화가 없었으나 좌우 풀백에는 낯선 선수들이 이름을 올렸다. '윙포워드' 조영철은 차두리의 공백을 메웠고 '센터백' 김영권은 이영표의 빈자리를 대신했다.


4-1-4-1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실제로 아시안컵 당시 우즈베키스탄과의 3-4위전에서 홍정호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하며 4-1-4-1을 본격적으로 가동한 바 있다. 이미 그때부터 조광래 감독은 4-2-3-1에서 4-1-4-1로의 전환을 생각했는지 모른다.

온두라스전의 핵심 전술 포인트는 크게 세 가지다. 1) 구자철 경쟁자의 등장, 2) 윙포워드의 풀백 기용, 3) 박지성의 후계자 경쟁이다.

우선, 김정우는 맹활약을 펼치며 구자철과의 경쟁 구도에 불을 붙이는데 성공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두 선수 모두 수비형 미드필더 출신이라는 점이다. 이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조광래 감독은 전문적인 공격형 미드필더 대신 수비력과 패싱력을 갖춘 수비형 미드필더를 전진 배치했다. 그리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구자철은 아시안컵 득점왕을 차지했고 김정우는 온두라스전에서 1골을 기록했다.

최전방에 박주영을, 홀딩에 기성용을 배치한 4-1-4-1 포메이션


수비형 미드필더의 전진 배치가 성공을 거둔 이유는 간단하다. 구자철과 김정우가 모두의 예상을 깬 득점력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안정된 수비력과 패싱력은 팀의 점유율을 높이는데 큰 기여를 했다. 조광래 감독의 안목이 뛰어났던 것일까? 아니면 선수 개인의 능력이 조광래 감독의 선택을 돋보이게 만든 것일까? 개인적으로는 후자라 생각된다.


포어 리베로 전술의 한계를 깨달은 조광래의 다음 선택은 '측면 공격수'의 풀백 기용인 듯 하다. 아시안컵 당시 '공격수 출신'의 오른쪽 풀백 차두리를 통해 재미를 본 그는 온두라스전에서 '윙포워드' 조영철을 오른쪽 수비수로 기용했다. 결과적으로 나쁜 선택은 아니었지만 온두라스의 전력이 워낙 약했던 탓에 제대로 된 실험을 할 수 없었다.

조광래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차두리도 원래 공격수였다가 수비수로 변신해 잘하고 있다. 기존의 측면 공격수 중 한 명을 수비수로 내려 오른쪽 풀백 서브 자원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포스트 이영표로 관심을 모았던 홍철의 주가는 하락이 예상된다. 오른쪽에 공격수를 기용할 경우 왼쪽은 김영권처럼 수비력이 좋은 선수가 선택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국은 전방부터 강한 압박을 시도했다. 좌우 윙포워드는 물론 김정우와 이용래까지 높은 위치까지 올라오며 온두라스의 빌드업을 방해했다.

온두라스전에서 박지성의 역할은 김보경이 맡았다. 등번호까지 7번을 달고 나온 김보경은 45분 동안 활발한 움직임을 선보이며 대선배의 공백을 어느 정도 메우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박지성의 후계자 경쟁은 좀 더 오랜 시간 지켜봐야할 듯 하다. 우선, 구자철이 합류할 경우 김정우가 중앙에 서고 구자철이 좌측에 포진할 수도 있다.

또한 아시안컵에서 김보경을 밀어냈던 손흥민과 지난 2월 터키와의 평가전에서 데뷔전을 치른 남태희도 경쟁상대다.(물론 남태희는 이청용의 잠재적 경쟁자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온두라스전에서 후반 교체 출전한 이근호와 지동원의 존재도 간과할 수 없다. 이근호는 1골을 기록하며 예전의 기량을 회복한 듯 했고, 지동원은 전방과 측면 모두 소화가 가능한 선수다.

이제 경기 내용에 대해 좀 더 세부적인 분석을 해보자. 사실 온두라스전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상대가 너무 약했기 때문에 평가전 그 이상의 의미를 찾기 힘든 경기였다. 심지어 중국마저도 3-0 대승을 거둔 온두라스가 아닌가. 조금 힘들고 돈이 많이 들더라도 국내보다는 원정 평가전을 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분석① l 이청용의 슈팅이 많았던 이유

경기 내내 온두라스의 좌측면은 블랙홀과도 같았다. 특히 피게로아는 매번 위치 선정에 실패하며 이청용에게 많은 공간을 내줬다.

이청용은 전반 20동안 무려 4차례 결정적인 슈팅을 시도했다. 온두라스전에서 유독 이청용에게 찬스가 많이 생겼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온두라스의 좌측면 수비가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피게로아의 움직임은 EPL 선수라고 보기 힘들 정도였다. 전반 내내 포백간의 간격을 유지하지 못하며 공간을 내줬다.

한국이 전반에 기록한 두 골이 모두 온두라스의 좌측으로부터 나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정수의 선제골은 프리킥 상황에서 나왔지만 골이 터진 위치는 온두라스의 왼쪽이었고, 김정우의 두 번째 골도 온두라스의 좌측이 무너지며 골망을 흔들 수 있었다. 두 골 모두 피게로아의 잘못된 위치 선정 덕분이었다.

분석② l 변칙 풀백, 조영철과 김영권
조광래 감독은 포어 리베로를 접는 대신 기성용에게 수비적인 역할을 부여하며 풀백을 끌어올리는 전술을 시도했다. 그로인해 한국은 공격시 이정수와 황재원이 좀 더 넓게 포진하고 기성용이 내려와 일시적으로 스리백의 형태를 띠기도 했다. 당초 스리백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됐던 김영권은 생각보다 적극적으로 공격 가담에 나섰다.

조영철의 풀백 기용은 측면 공격을 강화하는데 있어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수비력이 받쳐주지 않기 때문에 상대 역습에 쉽게 공간을 내줄 우려가 있다. 심지어 수비수로서 다년간 경험을 갖춘 차두리도 아시안컵에서 이러한 문제점을 노출한 바 있다. 변칙 풀백 역시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하는 이유다.

갈무리 l 대표팀에게 국내 평가전이란?
개인적으로 3번의 국내 평가전보다 1번의 원정 평가전이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서울월드컵경기장에 초정된 국가 가운데 제대로 된 전력과 컨디션을 갖춘 팀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일본과의 한일전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물론 월드컵 아시아 예선을 앞두고 유럽의 강호들과 평가전을 치를 필요는 없다. 하지만 온두라스전처럼 무의미한 평가전을 치를 필요도 없다.

박지성과 이영표의 은퇴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근호의 복귀와 지동원, 김보경 등의 성장은 반가운 일이다. 특히 이근호의 복귀는 공격 라인을 더욱 두텁게 만들어줬다. 그는 최전방과 측면 모두 가능한 선수다. 온두라스전처럼 측면에서 박지성의 공백을 대체할 수 있고 때로는 박주영이 빠진 최전방 원톱으로 나설 수도 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