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1-1 한국] 정성룡의 실수와 플랜B의 부족
[피치액션 l 런던(영국) 안경남] 2011 카타르 아시안컵 조별리그 최대 빅 매치답게 재미있는 경기가 펼쳐졌다. 한국은 초반부터 강한 압박을 시도하며 경기를 주도했고 호주는 예상대로 높이를 활용한 힘 있는 축구를 구사했다. 굳이 팔이 안으로 굽지 않더라도 한국이 좀 더 나은 경기를 한 것이 사실이다. 호주는 공중 볼을 제외하곤 그다지 위협적인 찬스를 연출하지 못했다. 전술적으로 상당히 경직돼 보였고 후반의 동점골 역시 정성룡 골키퍼의 실수가 컸다. 지동원의 결정력이 조금만 더 좋았다면 한국이 쉽게 승리할 수도 있었다.
선발 라인업 l 최강멤버 그대로
당초 몇몇 언론들은 조광래 감독이 변형 스리백을 사용할 것이라고 추측했지만, 바레인전과 비교해 달라진 점은 출전이 불가능한 곽태휘 대신 황재원이 들어왔다는 것뿐이었다. 지동원이 원톱 역할을 맡았고 구자철이 그 뒤를 보좌했다. 그리고 좌우 측면에는 박지성과 이청용이 배치됐다. 중원에선 바레인전에 이어 또 다시 기성용과 이용래가 호흡을 맞췄는데, 이용래의 경우 바레인전과 비교해 좀 더 공격적인 움직임을 보였고 기성용은 홀딩 역할에 치중했다.
홀거 오지크 감독도 인도전과 똑같은 베스트11을 구성했다. 해리 키웰과 팀 케이힐이 전방에 배치됐고 브렛 에머턴과 브렛 홀먼이 좌우 측면에서 경기를 시작했다. 포백에선 K-리그 성남 일화 소속의 사샤 오그네브스키와 루카스 닐이 호흡을 맞췄다. 골문은 풀럼에서 활약 중인 마크 슈워처가 지켰다.
한국의 선제골 l 이번에도 구자철
앞서 언급했듯이 한국의 출발이 좋았다. 지동원을 비롯해 공격수들이 상대진영에서부터 강한 압박을 시도하며 호주를 당황시켰다. 그로인해 호주는 자주 패스 미스를 저질렀고 한국은 중원에서 여러 차례 가로채기에 성공했다. 바레인전에서도 그랬지만 호주전 역시 지동원의 플레이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수시로 후방까지 내려와 연결고리 역할을 수행했고(지동원보다 구자철이 앞선 위치에 있는 경우가 많을 정도였다) 역습 시에는 좌측면으로 빠지며 구자철, 박지성의 이선 침투를 이끌었다.
그러나 호주의 수비도 만만치 않았다. 제이슨 쿨리나와 제디낙이 포백 바로 앞에서 1차전 저지선 역할을 했고 사샤와 닐이 파워와 높이를 앞세워 한국의 공세를 막아냈다. 팽팽했던 흐름이 깨진 건 호주의 프리킥 이후였다. 정성룡이 곧바로 전방의 지동원에게 롱 패스를 시도했고 지동원이 박스 안에서 정확한 볼 키핑을 통해 쇄도하던 구자철에게 볼을 연결했다. 구자철은 침착하게 오른발 슈팅으로 호주의 골망을 흔들었다.
구자철의 선제골은 호주의 약점이 그대로 들어난 장면이었다. 이날 호주는 공격에서 수비로 전환하는 속도가 상당히 느렸다. 이후에도 몇 차례 이러한 위기를 맞이했으나 사샤과 닐이 의도적으로 파울을 범하며 막을 수 있었다. 어쨌든 한국은 호주의 약점을 파고들며 선제골을 터트렸고 심리적으로 안정된 경기를 운영할 수 있었다.
양날의 검 l 차두리의 오버래핑
전반에 한국은 4차례 위험한 찬스를 내줬다. 케이힐과의 헤딩 경합 이후 문전에서 키웰에게 슈팅을 허용했고(다행히 높이 뜨며 위기를 면했다) 키웰의 강력한 프리킥과 날카로운 왼발 슈팅 그리고 케이힐에게 단독 찬스를 내줄 뻔 했다. 3번째와 4번째가 문제였다. 두 번 모두 매우 비슷한 위치에서 발생했다. 우측에서 돌파를 허용했고 수비라인이 한쪽으로 쏠리며 좌측에서 상대에게 오픈 찬스를 내줬다.
키웰에게 왼발 슈팅을 허용한 3번째의 경우, 좌측에 있던 홀먼이 우측으로 이동하며 한국 수비진의 시선을 유도했고 전방에 있던 키웰이 홀먼이 있던 좌측으로 빠지며 찬스가 생겼다. 본래 키웰에 대한 1차적 전담수비가 한국의 중앙 수비수(이정수, 황재원)에게 있었기 때문에 좌측으로 이동한 키웰을 순간적으로 놓쳤다고 볼 수 있다.(차두리도 홀먼에 시선이 고정되다보니 키웰의 이동을 제대로 눈치 채지 못했다)
이처럼 한국이 유독 우측에서 찬스를 많이 허용한 이유는 무엇일까. 1) 차두리가 지나치게 높은 위치까지 전진하며 좌측에 비해 공간이 많이 생겼고, 2) 차두리가 오버래핑에 나설 경우 수비형 미드필더들의 커버 플레이가 완벽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1994년 월드컵 대표팀을 맡았던 김호 前감독도 일간스포츠 칼럼을 통해 비슷한 지적을 했다.
"차두리의 공격 가담이 많았다. 공격적인 움직임은 좋았지만 그로인해 전체적인 균형에 문제가 생겼다. 이때 이용래와 기성용은 상대 역습에 대비해야했다. 차두리가 수비로 돌아오는데 시간이 걸려 그 자리에서 위험한 장면이 연출됐다. 수비형 미드필더가 따라 올라가서 생긴 문제다"
바레인전에서 확인했듯이 차두리의 오버래핑은 한국의 공격력을 극대화시키는데 있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바레인전의 경우 상대의 역습이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지만 호주전은 달랐다. 한국이 8강 이후에 만날 이란, 일본과 같은 강팀들과의 경기를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지금의 문제점을 해결해야할 필요가 있다.
에이스 충돌 l 박지성 vs 키웰
확실히 클래스가 달랐다. 한국의 박지성과 호주의 키웰을 두고 하는 얘기다. 박지성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파괴력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마치 조금씩 기어를 올리듯 90분 내내 기복 없는 경기력을 선보였다. 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체력적인 문제로 인해 페이스가 떨어졌던 지동원과 구자철 등 어린 선수들이 넘어야할 과제이기도 하다.
당초 호주의 경계대상 1호는 '헤딩의 달인' 케이힐이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가장 위협적인 선수는 키웰이었다. 리즈 유나이티드 영광의 멤버이자 리버풀 출신인 그는 강력한 왼발을 무기로 시종일관 한국의 골문을 위협했다.
호주의 만회골 l 정성룡의 실수
먼저 변화를 준 쪽은 호주였다. 오지크 감독은 후반 시작과 함께 쿨리나를 빼고 칼 발레리를 투입했다. 포메이션상 변화는 없었다. 전반과 똑같이 4-4-2(혹은 4-4-1-1)의 형태를 유지했고 발레리가 쿨리나의 자리를 대신했다. 한 가지 전술적인 변화는 좌측의 홀먼이 전반에 비해 중앙에서 활동하는 시간이 많아졌다는 점이다. 홀먼이 좌측에서 중앙으로 움직일 경우 전방의 키웰은 좌측면으로 빠지며 공격을 전개했다.(사실 전반에도 이와 비슷한 움직임을 보였다. 그러나 후반이 좀 더 적극적이었다)
후반 62분 터진 호주의 동점골은 명백한 한국의 실수였다. 코너킥 상황에서 흘러나온 볼을 닐이 재차 올렸고 이를 제디낙 헤딩골로 연결시켰다. 우려했던 공중볼 싸움에서 골이 터졌다. 정성룡 골키퍼의 실수가 아쉬웠다. 볼을 처리하기 위해 골문을 비우고 나왔으나 타이밍이 너무 늦었고 펀칭도 정확하지 못했다.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차라리 골문을 지키고 있었다면 좀 더 쉽게 볼을 막을 수도 있었다. 제디낙의 헤딩 슛이 그리 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물론 정성룡의 펀칭이 없었다면 강한 헤딩이 됐을 수도 있다)
이후 조광래 감독은 지동원과 구자철을 빼고 염기훈과 유병수를 동시에 투입했다.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다만 지동원의 경우 너무 일찍 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반면, 구자철은 이미 가벼운 부상을 당했고 체력적으로도 지친 상태였다) 이후 경기는 전반에 비해 훨씬 오픈된 형태로 진행됐다. 양 팀 모두 체력저하를 보이며 공수 간격이 벌어졌고 그로인해 공격의 속도가 훨씬 빨라졌다. 그러나 한국과 호주 모두 상대 문전에서 마침표를 찍지 못했고 경기는 1-1 무승부로 끝이났다.
갈무리 l 플랜B가 부족하다
조광래 감독은 후반 막판 유병수를 빼고 윤빛가람을 투입했다. 24분전 교체 투입한 유병수를 또 다시 불러들였다. 놀랍지도 않은 일이다. 조광래 감독은 부임 이후 투입했던 선수를 또 다시 벤치에 앉히는 일을 자주 하고 있다. 김정우, 염기훈, 유병수가 그랬다. 전술적인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라고? 그러나 그것마저 계산해야 하는 것이 감독 아닌가? 조광래 감독은 너무 자주 자신의 실수를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
이처럼 교체 투입했던 선수를 다시 불러들이는 이유는 플랜B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직접적인 비교를 할 순 없지만(전반과 후반은 결코 같은 상황이 아니다) 그럼에도 염기훈과 유병수가 투입됐을 때보다 지동원과 구자철이 있을 때 더 한국의 공격이 날카로웠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힘들다. 현재 한국은 베스트11이외에 믿음을 가지고 변화를 줄만한 카드가 부족하다. 손흥민이 큰 기대를 걸었지만 호주전에서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또한 후반 들어 급격히 저하되는 체력도 문제다. 바레인전과 호주전 모두 후반에 실점을 허용했다. 한국의 목표는 우승이다. 그러기 위해선 한 달 가까이 카타르에 머물러야 한다. 선수들의 체력 관리가 중요한 이유다.
